읽는 순서
편집자가 쓴 <<전태일 평전>> 독후감
글 노정임 / 그림 김진혁
도서관에 가면 보통 책을 3권 빌린다. 읽고 싶었던 책(도서관에 방문한 이유), 읽기 쉬워 보이는 책, 책표지가 마음에 들어 읽어보고 싶은 책. <읽는 순서>는 만화에세이로 읽기 쉬워 보이는 책에 속했다. 첫 장을 넘기고 후루룩 탐색해 보다가, [기획은 언제나 직감] 부분에서 마음이 동했다. 뭔가 시작할 때 뚜렷하게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마구 끌리는 일들이 있다. 주변사람들은 염려스러운 마음이겠지만, 공격적인 질문을 퍼붓고 나는 우물쭈물 대답을 흐린다. ' 감으로 잡은 기획을 눈에 보이는 물건으로 만들기가 시작된다.' 문장을 읽으니 내가 왜 감으로 잡은 기획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는지 깨달았다. 나는 늘 감에 움직이지만 뚜렷하고 구체화시키지 못했구나. 책을 통해 인생의 해답을 찾아가게 되는 점이 좋다.
<읽는 순서>는 새롭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. 하고 싶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,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? 시작할까 말까 고민하며 늦장 부리다 보니 시작하기 전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다. 천천히 바라보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고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니 나도 저자처럼 할 수 있을 것 같다. 생명을 불어넣고 우선 쓰는 중이다. 간단한 만화에세이로 생각했었는데 읽는 내내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.
필사)
기획은 언제나 직감 _ 10p
인과 관계가 뚜렷한 일은 참으로 드물다. 우연히 일어난 일들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잡느냐 외면하느냐는 내 선택이다. ••• 감은 명확하다. 보이지도 않고 처음엔 이유도 모르지만 꽤 명확한 편이다. 아마도 감은 나도 모르게 누적된 빅데이터일지도 모르겠다. 이유를 이제 찾아야 한다.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기획안은 늘 공격적인 질문을 받는다. “이거 왜? 이게 뭐?” 답하지 못하면 기획은 무위로 끝난다. 감으로 잡은 기획을 눈에 보이는 물건으로 만들기가 시작된다. 사람들이 좋아할 이유를 찾고 그다음에 콘셉트를 채워간다.
일기 전 준비운동 _20p
목표가 뚜렷한 책은 단단하게 엮인다. 종이를 여러 장 겹쳐 묶으면 책이 된다. 얇은 종이가 묶이면 무척 단단하고 강해진다.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일목요연한 순서가 생긴다. 책마다 다른데, 이 책은 처음에 목표가 떠오르지 않았다. 하고는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오래갔다.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. 목표를 찾기 위해 ‘준비운동’이 필요했다.
첫 번째 준비운동, 바라보기
나도 바라본다. 나는 왜 이 책을 쓰고 싶었을까? ••• 목표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과, 나 스스로 인물의 권위와 무게에 눌려 있어서다. ••• 그럴 땐 모든 처음을 생각해 본다. 내가 서있는 지점을 남의 일인 양 좌표를 찍어본다. 그러면 마음이 조금 시원하고 가벼워진다.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.
두 번째 준비운동, 꺼내놓기
머리와 마음속에 있을 때에는 고고하게 느껴지는 일도 꺼내 보면 현실감이 생긴다. 적절한 임시 제목 하나만으로도 생명을 얻는다.
내가 모르는 것을 읽는 순서 _ 32P
은근슬쩍 넘어갔던 것은 사실 다 모르는 것들을 외면하는 태도였다. '무지'를 자각하려면 더 솔직해져야 한다. 솔직할수록,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할수록 모르는 것과 아는 것 사이 경계의 둑은 튼튼해진다.
내가 모르는 것은 바다보다 넓지만 책이라는 형식을 갖추어 가다 보면 책이라는 배는 새지 않는 튼튼한 배가 된다. 목적지만 정확하다면 우리는 물에 빠지지 않고 충분히 건널 수 있다. 동시에 어떤 책도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. 책을 완벽하게 만들 수 없다는 체감을 책을 만들 때마다 번번이 한다. •••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선의 결과물을 향해 가보는 거다.
편집의 비법을 찾아서 _ 98P
20여 년 간 모은 글쓰기 비법을 공개하겠다.
1. 일단 써라.
2. 고치고 또 고쳐 써라.
편집자로 일하며 알게 된 비법이 하나 더 있다. 일단 쓰고, 계속 고쳐 쓰려면 뒷심이 필요하다는 거다.
1. 쓰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?
2. 누구에게 왜 쓰려고 하는가?
두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, 편집자가 마감을 독촉하지 않아도 일단 쓰고 계속 고친다. 하고 싶은 말이 명확할수록, 전하고자 하는 이유가 선명할수록, 그 글을 읽는 사람을 사랑할수록 일단 쓰고 계속 고친다. 글을 완성시키는 힘이다.
나의 노동을 타인들 앞에 꺼내 놓을 때 움츠러든다. 틀릴까 봐, 동료들과 생각이 다를까 봐, 나에게 어떤 나쁜 영향으로 되돌아올까 봐, 시시하다고 외면받을까 봐... 나의 일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기는 쉽지 않다.
소심한 편집자의 소소한 책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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